덕개 친구 사귀기 프로젝트
써씨 작가님
"...죽은 거야?"
"아니, 이 정도로 죽지는 않지."
"...가자, 그럼."
그들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확신이 든 나는 아픈 배를 부여잡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저 멀리 내팽개쳐진 내 지팡이와 이미 깨져서 그 기능을 상실한 등불을 품에 주섬주섬 안아들고 도로 기숙사로 향했다. 아이고, 사감 선생님이 발견하시기 전에 어서 돌아가야 하는데.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난 그 사람과 친해지려고 했다. 열차에서 항상 그 넓은 자리를 홀로 차지하고 있던 각별 선배가 외로워 보여서, 친구가 되고 싶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가 늑대인간 혼혈이라서? 괴물이라서? 에이 설마, 그 선배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닐 거야. 그는 나에게 마법 결투를 신청했고, 바보같았던 나는 그만 그것을 승낙하고 말았다. 내가 이기면 친구가 되어주겠다는 말에...바보같이 넘어가 버렸다. 상대는 나보다 세 살이나 많은 5학년인데,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는데. 대결에서 지면, 다신 옆에서 알짱거리지 말랬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갑자기 우울해져서,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워 곧장 잠에 들었다. 아 진짜 내일부터 절대 아는 척 하지 말라고 하면 진짜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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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이상한 후플푸프 꼬맹이한테 시달렸더니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았다. 왜 갑자기 나타나선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난리인지. 내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건 나도 안다. 그러나 그런 사실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친구가 없다고 사람이 죽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나는 사람과 함께 다니는 것 보다는 책에 코를 박고 다니는 편이 나았다. 책은 조용하거든. 쫑알쫑알 시끄러운 인간이랑 다르게. 그런데 자꾸 조그만 녀석이 나타나서 친구가 되고싶다며 내 옆을 맴도는 것이 귀찮아서, 어제 마법 결투를 신청했다. 상대는 세 살이나 어린 마법사였기에 양심에 아주 조금 스크래치가 났지만, 그 놈을 떼어놓을 방법은 이거밖에 없었다. 당연히 결과는 나의 압승이었고, 약속대로 그 애는 이제 나를 쫓아다니지 않을 것이다. 제발...제발 귀찮게 하지 말아라. 나는 도저히 그 애를 견딜 수 없었다. 나쁜 놈은 아닌 건 알지만, 미안한데 너무 귀찮아.
더 쫓아다니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무도 없어야 할 등 뒤에서 왠지 모를 시선이 느껴져 뒤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노란 기숙사 녀석이 따라오고 있었다. 제 딴에는 몰래 따라오는 것 같은데, 저 삐져나온 꼬리는 어쩔거냐. 으 멀린이시여, 쟤 좀 떼주세요 제발.
"...거기 있는 거 다 아니까 그냥 나와라."
"헐 어떻게 알았지."
"니 꼬리...이 멍청아..."
"어 근데 선배, 저 아는 척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요? 근데 선배가 먼저 아는 척 하셨네요? 와 대박 대박...저 이제 다시 선배한테 말 걸어도 돼요? 저랑 친구 해주는 거에요?"
아, 제발. 멀린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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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도끼 없다. 나는 그 날 이후로 계속해서 선배를 찾아갔다. 물론 선배는 항상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도망갔지만. 그래도 나는 꿋꿋이 그를 쫓아갔다. 처음에는 그냥 혼자 있는 사람 외롭지 말라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하도 거부하니 이상한 오기가 생겨버렸다. 기필코 저 사람이랑 친해지고 만다, 저 사람이 늘 홀로 차지하고 않는 그 넓은 열차 칸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말 테다, 하면서. 물론 그 오기 때문에 억지로 친해지려는 것은 아니다. 난 정말로 저 선배랑 친구가 되고 싶어서 노력했다.
"각별 선배~! 선배 어마방 잘하신다면서요. 저 이것 좀 가르쳐 주시면 안돼요? 아 제발요 너무 어려움."
"꺼져."
"각별 선배, 각별 선배~ 저랑 퀴디치 연습 하실래요?"
"퀴디치 싫어."
"각별 선배! 있잖아요, 내일 마법약 과제 뭔지 알아요?"
"내가 니 숙제를 어떻게 알아."
"각별 선배, 이번 방학에요, 집 갈 때 저 선배랑 열차 같이 타도 돼요?"
"미쳤냐? 타면 열차 밖으로 던져버린다."
"저 열차 밖으로 던져버릴 거에요?"
"...진짜 미친놈이냐? 이번 한 번만 봐 준다."
"헐 진짜요? 선배, 저 개구리 초콜릿 하나만 사주시면 안돼요? 돈 안 들고 왔는데..."
"가지가지 한다. 먹고 떨어져."
"선배, 선배.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반말해도 돼요?"
"별 미친...몰라, 맘대로 해라..."
"와, 진짜요? 아싸! 형, 형, 이제 나랑 친구 해주는 거야?"
"절대 싫어."
대충 이런 식의 대화가 거의 다섯 달 내내 이어졌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져서 지금은 서로 장난도 치고 자주 같이 다니는데, 이 사람 인성이 생각보다 좀 많이 심각하다.
"어이쿠, 이게 누구야? 마법약 T*맞은 후플푸프의 자랑 박덕개 아니야?"
* T : 트롤보다 못함. 호그와트 학점 중 최저점이다.
"아 좀!! 형이 나 T 맞는데 보태준 거 있냐? 공부 잘하면 다야?"
"어. 다야."
"아 진짜 김각별 겁나 재수없어, 진짜! 꺼져 꺼져, 공부 잘하는 사람이랑 친구 안 해!"
씨이, 공부 잘 해서 좋겠다, 인간아.
"언제는 제발 친구 해달라고 쫓아다녔으면서, 나랑 친구 안 하겠다고?"
"이런 사람인 줄 몰랐지!"
"저런, 하지만 뱉은 말에는 책임을 져야지. 선택했으면 견뎌라! 이런 말 모르냐?"
"몰라, 그거 또 즉석에서 지어낸 거지? 이제 안 속아."
이 사람은 그럴 듯한 말 지어내는데 재능이 넘쳐 흐르는 인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재밌긴 한데...나 좀 그만 놀려!
"에휴, 슬리데린 학년 1등 이 각별님이 특별히 마법약 개인 과외 해준다."
"어, 진짜? 진짜로?"
"50 갈레온."
"미쳤어?"
그리고 하나 더...돈을 엄청 밝힌다. 슬리데린의 상징이 야망이라는데, 이 사람의 야망은 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래도, 친구가 되어서 좋을 때도 있다. 나는 늑대인간 혼혈이다 보니, 가끔 이상한 녀석들이 자꾸 나를 놀려대는데...전에는 나 혼자서 그것들을 견뎌내야 했지만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것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야, 늑대인간 지나간다."
"아우우우우!"
"...저리 가라......"
"아우우!"
"가라잖아."
"늑대가 뱀을 한 마리 달고 다니네."
"안들리냐? 꺼지라고."
각별 형이 생긴 건 좀 해골같이 무섭게 생긴 데다 슬리데린 특유의 음침한 분위기 때문에 금방 꼬리를 내리는 놈들이 허다했고, 다행스럽게도 그런 녀석들이 나를 다시 건드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 학교생활 편하다.
"야, 근데 너는 쬐깐해가지고 뭐 울어봤자 늑대같지도 않을 것 같은데. 아우우웅~ 이런 소리나 나려나?"
"미친 각별"
맞다, 이 자식이 내 학교생활 최대 고비였지. 그래도, 항상 말은 이렇게 하지만 우리는 나름 좋은 친구였다. 절대 못 친해질 줄 알고 엄청나게 걱정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나 싶기도 하고...아무튼 즐거우니 아무래도 좋다.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 형."
"뭔 새삼스럽게 미친 소리야...?"
"아 그냥 그렇다고, 좀!!"
"알았어, 이것아."
창문으로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反復:반복
하청 작가님
... 죽었어?
내가 죽었겠냐?
그 말에 수현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200년만에 나타난 타락 천사의 처형 집행일. 그 날이 오늘이었고, 그 타락 천사는 각별이었다. 그러나 각별의 날개는 여전히 하얀색이었다. 집행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각별은 멀쩡히 불구덩이에서 살아 돌아왔다. 무언가의 공포심, 그러나 여전히 그임에 감사할 뿐인 안도감. 이 둘이 수현을 감쌌다. 각별이 능청스레 말을 내뱉었다. 내가 안 죽는다고 했잖냐. 왜 그리 놀라서는. 수현은 그런 각별을 이해할 수 없었다. 타락 천사의 처형 집행은, 신이 직접 하는 것인데 어째서 넌. 각별의 하얀 날개는 그가 타락 천사라는 것을 이해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 끝이 조금 그을렸지만 그 뿐이었다. 불구덩이 앞을 지키라고 명 받은 악마들은 어디에 갔는지 그 흔적조차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그의 마지막을 지키러 온 수현만이 그 집행장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사라졌다. 기시감이 수현을 덮었다.
있잖냐, 너는 왜 나랑 친구해줬냐?
... 그건 갑자기 왜?
그냥.
수현이 각별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냥, 천사랑 악마랑 친구가 되는 게 이상한 일이라고 할 정도까진 아니잖아? 난 형을 믿었으니까. 수현이 올곧은 눈동자로 각별을 쳐다본다. 각별이 웃음 몇 번을 내뱉자, 수현이 얘가 왜 이러나 싶었는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형이야말로 왜 그래? 갑자기 오글거리게.
글쎄다, 아마 또 다시 돌아갈 테니까.
.. 뭔 소리야, 그건 또.
각별이 하얀 날개를 펄럭인다. 그 모습이 무언가, 계속 기시감이 느껴져서 수현은 뭐라 말하지 못했다. 말할 수가 없었다. 수현아, 있잖아.
이젠, 제발 네가 기억을 가지고 루프 했으면 좋겠다.
.... 뭐라고, 형?
갑자기 세계가 흔들어진다. 새하얘지더니, 이내 모든 것을 앞으로 되돌린다. 그 과정에서 생긴 시간의 틈에 각별이 멍하니 서 있다. 익숙한듯 시간의 틈 끝에 각별이 섰다. 끝에, 그을러진 깃털들이 한가득 쌓여있다. 49번째 루프. 각별이 그을린 깃털 하나를 날개에서 빼서는 끝에 조심히 놓는다.
나 참, 이 정도면 알아줄 때도 되지 않았나.
중얼거리는 각별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온다. 각별이 그것 또한 예상했는지 옆을 돌아본다. 괴상한 공룡 모자를 쓴 청년이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실패냐? 그 말에 각별이 이마를 짚으며 원망하듯 말을 내뱉기 시작한다.
야, 신아. 이 정도면 운명 좀 그만 꼬아도 되지 않냐?
에이, 너희 반응이 너무 재밌는걸.
장난으로 말하지 말고.
.. 뭐, 어차피 이것도 너희 운명이거든.
운명의 신, 공룡이 장난스레 웃음을 내뱉었다. 신들 중 가장 장난스럽고, 잘못 걸리면 큰일 난다는 그 신이 하필 각별을 놀리는 데에 맛을 들여버렸는지 난리다. 당사자는 절대 원치도 않던 루프를 계속 시켜버리는 신에 각별도 질릴 대로 질렸다. 정말, 지독히도 질렸다. 한낱 타락 천사일 뿐인 각별이 신한테 대들며 욕하는 것만 봐도 뻔히 보였다. 신이 각별에게 준 시련은 간단했다. 간단하다고 말하긴 했다만 각별이 보기엔 좀 많이 어려웠다. 수현이 루프를 깨닫는 것. 그것은 49번을 시도해도 되질 않는, 각별이 미쳐버릴 만한 시련이었다. 각별이 죽지 않게 도와준답시고 -당사자는 원치 않는 도움이었다.- 준 시련이 저딴 것이었으니 빡칠만도 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능력으로 수현의 기억을 되돌리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기억은 천사와 악마 따위가 건드릴 수 없는 미지의 존재나 다름 없다. 한낱 천사인 각별이 할 수 없는 것이고. 각별은 이 헛짓거리를 정말 그만하고 싶었다.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통하지 않는 것을 각별은 잘 알고 있었다. 불에 들어가도 죽지 않고 멀쩡히 나오는, 어이없는 웃음만 나오는 몸인데 그런 시도가 통할 리가 없으니까. 각별은 불사의 몸을 지녔다. 루프를 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것은 각별에게 고통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고통에 몸부림쳐도 죽지 않았다. 그래서 수현의 기억이 돌아오길 부디, 부디 빌고 바라고 있었다. 각별이 공룡을 째려보자 공룡이 눈 하나 끔벅 안하고 밝게 웃었다. 그럼, 무운을 빌지.
팟, 하고 눈이 떠진다. 불 속에 있는 자신을 악마들이 쳐다보고 있다. 멀리서, 토끼 귀가 보였다. 누가 봐도 수현임을 증명하듯이 쫑긋거리는 토끼 귀가 각별의 시야에 잡힌다. 하얀 날개로 자신을 보호하던 각별이 자신을 처형할 예정이었던 공룡을 바라본다. 공룡이 그것을 눈치채고 저를 바라보더니 생긋 웃는다. 저 악독한 새끼. 작게 중얼거린 각별이 공룡이 건네는 구슬을 바라보았다. 하나의 결점도 없는 진주 같은 구슬. 불의 열기가 더욱 거세지자 각별은 언제나 그렇듯. 49번째 구슬을 삼킨다. 불의 세기가 더욱 거세져서, 각별을 삼키려 하여도 각별은 멀쩡했다. 처음에 날개가 조금 그을린 것 빼곤 다 괜찮았다. 신이 큰 양피지를 꺼내더니 무언가를 끄적이곤 양피지를 불에 태운다. 신의 권능이 처형장에 널리 퍼진다. 운명의 신과 함께 모두가 사라지고선 수현만이 시야에 잡힌다. 각별이 또 다시, 50번째 똑같은 걸음으로 불구덩이를 빠져나온다.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오자 수현이 놀란 걸음으로 뛰어온다. 그러곤 각별을 보더니 멈춘다. 각별이 속으로 3초를 센다. 3초가 지나자, 어김없이 수현이 물었다.
... 죽었어?
내가 죽었겠냐.
그 말에 수현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각별이 한숨을 내쉰다. 이번에도 실패다. 도대체 언제쯤 루프가 되지 않을지. 각별이 주먹을 세게 쥐었다.
제발, 너 언제쯤 알아 차릴래.
... 뭐?
루프 좀 그만해보자. 내가 이 말 내뱉었으니 또 루프하겠지. 루프라는 이야기만 꺼내도 또 루프, 구슬을 안 삼켜도 루프, 네가 기억을 못 찾아도 루프. 이 정도면 그냥 이 안에서 살라는 말 아니야? 그냥 이러려니 하고 살라는 망할 신의 계획이냐? 그럼 먼저 말해. 제발.
수현의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한다. 그게 무슨 말이야 형. 그 말에 각별에게 남아있던 일말의 희망조차 사라지고 만다. 솔직히 이 말을 하면, 수현이 쨘하고 기억을 되찾는 만화에 나올법한 그런 엔딩을 기대하고 있었다. 뭐, 만화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라는 듯 뱉은 수현의 말에 모든 기대가 사라졌지만. 각별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래, 어쩌면 이 운명의 끝은, 계속 루프일 수도 있겠지. 모든 것을 포기한듯 웃던 각별이 처형장 바닥에 드러눕는다. 운명의 신이 재미없다며 툴툴대는 것이 각별의 귀에 생생히 들리는 듯했다. 아하, 아하학. 이 망할 신들 다 죽어버리라지. 세계가 다시 한번 비틀어진다. 51번째 루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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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ROR, 시간의 굴곡으로 인해 루프를 깨닫는 자가 생겨납니다.]
[에러로 인해 타락 천사와 악마의 운명의 실이 풀어집니다.]
[새로운 이가 시간의 틈으로 빠집니다.]